언론보도

 

 

 

 

본 논고는 77년 “조형주의 선언” 이후 회화의 하모니즘을 창시한 거장 김흥수에 대한 새로운 미술사적 정리를 요구하고 있다. 추상

(abstraction)과 구상(figuration)을 한 화면 속에 병존시킨 회화 양식인 조형주의 대표작가는 분명 한국의 김흥수인 것을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의 방한에 의해 확인하고 있다.

조형주의에 대한 새로운 개척에서 이론적인 확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조형주의 미술의 대표작가로 마땅히 세계 미술사에 정

립되어야 할 작가에 대한 우리들의 올바른 인식과 적극적인 성원이 필요하다.

80년대 들어 미국화단의 유명화가로 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의 작품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 알려졌던 ‘

추상(abstraction)과 구상(figuration)을 같은 화면에 병존시키는 회화양식’이 우리 나라 서양화가인 김흥수씨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는 지난 8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문화 행사인 세계현대미술제의 국제운영위원으로 내한

하여 김흥수씨의 화집과 관계자료를 검토한 끝에 ‘김흥수씨의 조형주의는 데이비드 살레의 그것보다 앞선 것임을 확인했으며, 김흥수

씨는 국제 미술계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자신이 편집책임자로 있는 이탈리아 미술전문지 <도(Domus)>

에 발표하고「파리」「베니스」등에서 이의 재평가 작업을 위한 전시회를 기획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흥수씨는 자신의 조형주의 작품을 이에 미국화단에서 발표한 바 있고 77년 전시에서 ‘조형주의 선언’까지 해놓은 상황에서 데이비드

살레의 작품이 최초의 시도로 평가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실제 83년 간행된「World Art Trends 1982」에 수록된

작품을 보면 그의 작품이 자신의 조형주의 작품과 너무 흡사하여 모방으로 볼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김흥수씨는 자신의

작품이 그 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조형주의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비평계가 예술

일반론에 대한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관심에만 치우쳐 실제 작품을 평가하고 발굴해 내는 작품론적인 시각의 부족 때문에 일어나게 된

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데이비드 살레의 작품이 김흥수씨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은 실제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현대미술사에서 평가되어

지는 그의 조형주의에 대한 논의, 그리고 이것이 외국의 미술평론가에 의해 재평가되고 있는 것은 국내의 미술계에 몇 가지 미묘한

미를 가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그 동안 서양화가 도입된 이래 외국 사조의 유입과정에서 모방 또는 답습에 의해 한국 현대미

술이 지탱되어 왔다는 일부 화단에 대한 비판 속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화풍이 세계 화단의 흐름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의 가능성이 확인

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국내화가에 의한 새로운 양식과 기법의 발전을 국내 비평계가 적절한 발굴과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의

제시, 대외적인 발표와 홍보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살레가 명백히 김흥수씨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

밝혀지고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확보된다면 미국의 화단에서 살레의 위치와 평가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일 것이

김흥수씨의 조형주의

구상과 추상적인 기법을 섭렵하였던 김흥수씨가 처음 조형주의를 시도한 것은 73년 경 그의 조형주의(調型主義:Harmonism)는 한 화

면에 추상적인 화면과 구상적인 화면이 공존하는 회화양식으로 음(陰)과 양(陽), 주관과 객관, 추상의 우연적 요소와 사실주의의 필연

적 요소가 상호보완하면서 조화를 통해 완전함에 이르는 작화 방법, 그는 77년 이에 대한 공식적 확인 작업으로 미국의 국제통화기금

(IMF)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다음과 같은「조형주의 선언」을 한 바 있다.

具象과 抽象의 鎔解

調型主義 美術의 宣言

陰과 陽은 서로 상반된 극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 어울리게 될 때 비로소 完全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추상미술의 등장 이후 세계의 화단은 구상주의와 추상주의가 서로 반복적인 상극을 이루어 왔다. 사실적

인 표현은 틀 속에 얽매여 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추상적인 표현은 우연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은 완전치 못함을 의미한다.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의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

형의 영역을 넘는 오묘한 調型의 예술세계를 전개하게 된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진실인 것이다. 極에 이르는 추상의 우연의 요소

들이 사실표현의 필연성과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더욱 넓고 깊은 예술의 창조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1977년 7월 7일

Symphony of FigurativismJuly 7. 1977

Kimsou(Heung-Sou Kim) and Abstractionism Proclamation of Harmonism.

The Yin and Yang are eternally opposed. And yet, only when the two forces interact and harmonize with each other can a

perfect world be realized.

The same principle applies to the world of art. Ever since the emergence of abstractionism and figurativism have been

posed as two extreme opposites.

While the realist can be side to have been confined by his “form”, the abstractionist has been exposed to the peril of

contingency. Alone, neither could attain “perfection.” Only when the two opposing schools come together to interact and

harmonize with each other, a new profound world of contrasting schools must be brought together to form a single

harmonious unit.

This is not sophistry but truth. A more profound creativity can be attained when the “Contingent” elements in abstractionism

harmonize with the “necessity” of realism.       uly 7. 1977                                                       Kimsou(Heung-Sou Kim)

김흥수씨는 조형주의를 통해 그가 일생 동안 끊임없이 추구해왔던 회화를 결정적으로 조망하려 했던 시도였음에도 이에 대한 국내외

의 관심은 불러 일으키지 못하였다. 처음 그가 추상적인 회화의 구상적인 회화를 병치시킨 작품을 당시 미국의 필라델피아 미술관

미술교육부에서 강의를 맡을 때 학생들의 반응은 대단히 좋은 것이었음에도 그의 전시회에 대해 미국화단은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이에 대한 국내의 비평적 원조를 기대하였으나 국내화단은 더 냉담한 반응을 보였었다. 7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을 때

도 비평가들이나 미술관계자는 ‘균형미나 양식적 완성도를 보여준 것은 오히려 파리시절의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추상·구상의 병존

주장은 의욕적인 것이나 이런 이질적인 요소가 작품 속에서 조화있게 완결될 수 있나는 아직 이 작가의 과제’라고 하여 그의 조형주의

를 과도기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실험적인 양식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또한 일부 미술지와 신문에서는 그의 작품을 추상쪽과 구상

쪽을 따로 떼어 게재하거나, 화랑 측에서 구상쪽 혹은 추상쪽만을 전시하겠다고 제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형주의는 김흥수씨의 후기 회화를 이해하는 핵심이 되고 있는데 그가 처음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와 프랑스에서 다시 유학을 하면서

‘미술사적인 문맥을 통해 회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던 그에게 있어 조형주의는 이러한 시각으로 형성된 그의 독특한 양식으

로 볼 수 있다. 김흥수씨는 파리 시절에 구상적인 화면에 표현주의적인 강렬함을 보여주는 회화를 구축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

데국전에서도 추상과 구상을 공존시키는 반구상을 제창하는 등 화면에 추상과 구상을 공존시키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였다.

그는 미국의 교환교수로 가 추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추상과 구상의 공존에 대한 방법적 모색을 시도한다. 1970년에 제작된「무

기와 창살」은 추상적 화면에 실물 오브제인 칼을 부착한 작품으로 세쪽의 캔바스를 연이어 제작한「무한」과 함께 그의 조형실험의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77년「조형주의 선언」개인전에서는 추상과 구상의 공존된 완벽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모린의 나상」

시리즈와「염(念)」은 그의 조형주의 회화양식을 결정적으로 나타내주는 작품, 그는 귀국 후 계속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그의 이론을

다졌다. 그는 이 두쪽의 또는 세쪽의 화면 중 구상을 먼저 제작한다. 그리고 나서 구상이 표현할 수 없는 또 구상적 이미지에서 추출될

수 잇는 상징과 은유 그리고 무의식의 세계를 추상적 화면으로 옮기어 이를 접합함으로써 하나의 작업을 완성시킨다. 예를 들면 78년

제작한「누드」의 세쪽으로 된 화면의 중앙에는 사실적인 구상의 여체가 자리잡고 있는데 왼편의 격자무늬와 원점 그리고 상단의 붉

은 빛은 여성의 희망, 바람을 형상화시킨 것이고 오른편의 구멍이 뚫리거나 찢어진 화면은 여자의 고뇌와 숙명 그리고 어두운 면을 표

출한 것으로, 그는 여성이라는 인식을 총체적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실체로서의 이미지와 내면적인 세계의 명·암이 교차하는 이중성

(duality)을 한 화면에 병치함으로서 ‘완전함’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살레

한편 김흥수씨가 조형주의 선언을 한 이후 81년 데이비드 살레는 추상과 구상을 병존하는 두쪽으로 된 그림(diptych)으로 미국화단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고 살레는 불과 35세(현재)의 나이로 미술사적인 위치의 작가로 올라서고 있다. 그는 여러 가지 미디어를

등장시킨 화면 (multimedia painting)으로 테크닉, 양식,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회화를 발전시켰고 크기가 다른 화면을 병치시킴으로

서 마치 동시에 두어개의 TV 채널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비평가들은 급작스럽게 부상한 살레를 현대미술

의 최전위에 있는 작가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그의 회화를 ‘다른 어느 것보다도 보다 많은 정보를 보다 효과적으로 결합시킨 것’

으로 또 한편으로는 ‘그의 이미지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떠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란 견해를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살레는 1952년 오클라호마의 노만(Norman)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미술학교(the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영화, 비디오, 개념미술(Conceptual art)과 행위예술(Performance art)을 수업하였다. 살레가 완전히 회화 작업으로 돌아선 것은

75년 뉴욕에 오면서부터이다. 그는 작품을 구조주의적 방법으로 인식될 수 있는 꼴라지와 같은 그림(collagelike picture)으로, 균형

과 충격을 하나의 전체로 창조하기 위해 이질적인 요소를 한 평면 위에 배열해 놓은 작업을 시작하였던 것, 살레의 작업은 두쪽의 그림

이 전형적인 것인데 쓰거나 그린 글씨가 있는 화면 옆에 유명작품의 사진이나 복사화 다른 작가의 드로잉을 붙여 놓기도 하며 자극적

인 포즈를 한 누드를 그린 화면으로 한쪽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작품으로 그는 구상적인 화면 속에서 완전 추상으로부터

추상 과 구상을 결합시킨 회화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그의 이러한 개념은 많은 작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

는 일약 유명작가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김흥수와 살레

김흥수씨와 살레의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규명이 있어야 하겠지만 김흥수의「염(念), 1977」과 「모린의 나상,

1977」등의 작품과 살레의「My Subjectivity, 1981」,「The Worst and General, 1981」은 외양으로 흡사한 구조를 갖는다. 화면의

오른편에 구상적인 화면과 왼편의 추상적인 화면의 배치는 말할 것도 없고 누드의 등장, 원형의 무늬까지도 흡사하여 김흥수씨가

살레가 그의 작품을 모방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충분히 가능하게 하고 있다,. 살레가 동부지역인 뉴욕에 온 것은 75년이어서 당시

필라델피아 교수로 활동하면서 두 번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김흥수씨의 작품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보았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

그러나 살레 또한 뉴욕으로 오기 전 이미 84년 캘리포니아 미술학교의 졸업 작품전에 후에 그의 작품을 예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진

과 잡지에서 예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진과 잡지에서 뜯어낸 것으로 구성된 두쪽 그림(diptych)를 제작한 바 있어서 이전에도 살레

가 이러한 방법적 양식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흥수씨와 살레의 회화적 관심은 우연히 또 다른 공통점이 있

다. 둘 다 여체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김흥수씨의 작품에 등장하는 누드와 살레가 그려내는 누드의 의미는 다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누드는 둘의 그림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김흥수씨가 여체를 이상적인 미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있는

고전주의적인 입장임에 반하여, 살레의 누드는 다의적(多義的)인 성격을 지닌다. 그는 성(性)과 폭력의 연계성을 드러내면서 누드를

관객에 대한 도전으로 또는 포르노아트를 풍자하거나 성의 상투된 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화면에 등장시킨다.

김흥수씨와 살레의 작품에 대한 평가나 해석에는 서로 다른 작가적 성장 배경이나 문화적인 토양에서 보면 전혀 이질적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김흥수씨의 조형주의는 그가 오랫동안 천착했던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집요한 실험

정신으로 이끌어 내었고 그것을 ‘음’과 ‘양’의 동양적 사고방식에 의한 ‘조화’에 근거한 것인 반면에 살레의 작품을 보다 다의적인 분명

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각 미디어의 혼용으로, 다원화된 문명의 단순한 표출로 볼 수 있다. 실상 TV와 다양한 매스미디어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한 세대로서 살레의 작품은 뒤죽박죽으로 경쟁하듯 쏟아져 나오는 정보와 문화적 이기의 속성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보다 사회적이고 문명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라면, 김흥수의 작품은 사회적이

고 문명적인 시각보다는 예술 혹은 미술계에서의 추상과 구상화의 문제를 통합하려는 회화적 시각일 수 있는 것이다.

김흥수씨의 작품과 데이비드 살레의 작품경향과의 비교는 다른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새

로운 조형적 아이디어가 미술사적 평가대상이 되어야 할 때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 이다. 만일 살레의 초기 작품에서의 아이디

어가 김흥수씨의 작품에서 직접 모방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면 김흥수씨가 ‘추상과 구상을 한 화면에 공존시키는 회화적 야식’의

창시자로서 당연히 평가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연의 일치였을 때 처음 시작한 김흥수씨에게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여건이 형성되고 이에 영향을 끼친 작가에게 돌아갈 것인가는 논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흥수씨의

조형주의와 살레의 다원적인 회화가 다른 것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더라도 구상과 추상을 결합하려는 명백한 시도는 김흥수

씨에 의해 시작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월간 미술세계/1987년 10월 호 중 발췌(글/前김진송 기자

참고자료

(1)「김흥수화집, 1979, 국립현대미술관편」

(2)「계간미술, 1979 겨울, 1977 가을」

(3)「Current Biography Year Book, 1986」

(4)「World Art Trend, 82, 1983」

(5)「ART NEWS, 1987. April」

(6)「New Yorker, 1984. April. 30」

(7)「조선일보 82.7.24」

(8)「Flash Art 1987. April」

(9)「Art Magazine 1986. Oct」

 

 

 재평가될 김흥수씨의 조형주의  -미국 화가 데이비드 살레 보다 앞서-     한국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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